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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칼럼] 심플 룰, 베스트 룰(이승철 원장)
등록일 2015.04.10 조회 4055

[경제 view &] 심플 룰 베스트 룰

[중앙일보] 입력 2015.03.2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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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법은 아무리 정교하게 고안해도 그 해석에 있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애매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최종 판단기관으로 사법부가 존재한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바로 그 법을 해석하는 방식에 있다. 법 해석의 기준이 간단명료해 누구나 예측가능하면 선진국이고 그렇지 않으면 후진국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과속금지라고 해놓고 제멋대로 단속하면 후진국이고 시속 100㎞ 이하라는 분명한 기준이 있으면 선진국이라는 뜻이다. 기준이 간단명료하다면 누구나 그 법을 지키려 노력할 것이고 설사 법을 위반했다 하더라고 그 사법 판결에 쉽게 수긍하게 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을 예로 들어보자. 공정과 불공정의 판단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판단기준이 간단하다. 바로 ‘소비자 이익’이다. 미국에서는 기업이 대리점에 판매 목표를 강제하거나 밀어내기 판매를 하더라도 공정한 행위로 여긴다. 그 이유는 결과적으로 소비자가 같은 상품을 더 싸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에서 불공정 거래의 기준은 복잡하고 애매모호하다.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영업활동이라도 불공정 거래로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과징금 처분 가운데 금액기준 88%가 행정소송으로 이어졌다. 또 지난 한 해만도 과징금 소송에서 공정위가 패소해 취소된 금액만 4000억원에 달한다. 판단기준이 복잡하니 그 결정에 이의제기를 하는 국민이 증가하는 것이다.

 법률의 해석이 불확실할수록 소송비용의 증가 등 사회적 낭비를 초래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 간의 갈등 나아가 정치적·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보다 근본적인 방법은 바로 ‘입법’ 단계에서 ‘심플한 룰’을 만드는 것이다. 간단명료한 법을 제정하는 것은 한국이 법치 선진국으로 가는 첫 걸음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 정책에서 심플한 룰은 무엇이 돼야 할까. 답은 뻔하다. 우리사회에서 국민들이 가장 원하고 시급한 문제 바로 ‘일자리’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부족해진 복지 재원을 법인세 인상을 통해 채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법인세 논쟁에서 정작 국민들이 희망하는 좋은 일자리가 늘어날 지에 대한 검토는 없는 것 같다. 세계는 지금 가히 ‘일자리 전쟁’ 중이다. 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법인세를 낮추고 외국기업을 끌어오려 다들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 지난 2000년 이후 법인세를 내린 나라는 많지만 올린 나라는 거의 없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 역시 실업률 8% 이하라는 공약을 지켜 재선에 성공했다. 법인세 인상이 과연 ‘일자리의 양과 질’을 높이는 지 간단명료한 관점으로 바라보자.

 또 개인이 소비할 돈이 부족하니 임금을 올려 내수를 활성화시키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논의에서도 일자리 효과는 관심 밖인 듯하다. 수년에 걸쳐 임금이 인상된 아파트 경비원들은 결국 대량 해고 사태를 겪었다. 줄어든 일자리는 대부분 무인 경비시스템으로 대체되는 게 현실이다. 임금을 인상하면 기존 일자리 몇 개가 사라지고 새로운 일자리 몇 개가 사라질 지 그 효과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다.

 규제 개혁도 마찬가지다. 정부 측에서는 어느 분야의 규제를 풀어야 좋을지 민간기업 측에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규제 중에서 일자리 창출을 가장 방해하는 것을 먼저 없애면 된다. 예를 들어 정부가 중점 육성하고자 하는 5대 서비스 산업 의료·관광·교육·소프트웨어·금융 분야의 규제는 기업이 일자리를 늘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다른 나라에는 없는 규제들로 우리는 수많은 좋은 일자리를 눈 앞에서 놓치고 있다.

 선진국 수준의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도 법과 제도를 만드는 데 간단명료하게 해야 한다. 본질적인 해결방안은 입법 과정에서 ‘좋은 일자리’ 등 한 가지 최우선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는 것이다. 복잡한 세상을 효율적으로 이끄는 법은 복잡한 룰이 아니라 ‘심플한 룰’ 이다. 단순함은 복잡함보다 쉽다. 다만 선택하는 데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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