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누구나 한번쯤 ‘이민을 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에 힘들어하는 자녀를 볼 때나 직장 생활에 치여 스트레스가 쌓일 때 문득 다른 나라에서 살면 어떨까 꿈 꿔본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금방 마음을 돌린다. 막상 이민을 간다면 나이 드신 부모님을 남겨두고 어떻게 떠날지 그 나라에서 생활비는 어떻게 벌지 혹시 인종차별을 겪으면 어떻게 할지 하는 걱정들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개인이 나라를 떠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한 국가에 머무는 텃새와 같다.
지난 겨울 금강 하구에서 가창오리 떼의 군무를 숨죽이며 바라본 적이 있다. 가창오리는 2500㎞ 떨어진 북쪽 시베리아에서 추위를 피해 한국으로 내려온다고 한다. 한국에 오는 철새 중에는 뉴질랜드를 출발해 무려 1만㎞를 날아오는 새들도 있다고 한다. 문득 새들을 지켜보며 ‘기업과 철새가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새가 풍부한 먹이와 온화한 기후를 찾아 날아가듯 기업도 기업하기 좋은 곳으로 떠나기 때문이다.
기업도 처음에는 텃새였다. 하지만 교통 통신수단의 발달로 기업은 점점 철새가 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최근 해외직구가 급속히 늘고 있다. 게다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국가 간 무역장벽이 사라졌고 영어가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공용어로 자리 잡았다. 결국 공장이 특정 지역에만 얽매일 필요는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공장과 본사를 어디에 둘까? 비즈니스를 하려면 불가피하게 비용이 든다. 기업들은 이런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곳을 매력적인 터전이라 여기고 머물게 된다. 세금도 기업을 움직이게 한다. 기업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철새들이 그렇듯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으로 떠나기 마련이다.
최근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기업들이 해외로 많이 나가고 있다. 우리 기업의 해외투자가 10년 새 열 배 늘었다. 반면 한국에 오려던 기업들은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경쟁국에서 둥지를 찾고 있다. 기업이 머물기에 우리의 환경이 너무 척박한 탓일 게다. 세계경제포럼은 우리나라의 노사협력 수준을 148개국 중 132위로 평가했다. 창업규제는 OECD 34개국 중 22위에 불과하다. 철새가 줄어들면 그 아름다운 군무를 볼 수 없어 아쉬울 뿐이지만 기업이 떠나면 당장 일자리가 없어지고 나라 살림살이가 팍팍해지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기업이란 철새를 어떻게 하면 불러들일 수 있을까? 철새를 모으려고 우리나라 기후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새들이 사는 곳을 깨끗이 하거나 먹이를 충분히 뿌려주는 일은 당장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한국이 국민소득 2000달러의 동남아 국가와 인건비·땅값으로 경쟁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우리가 당장 손댈 수 있는 부분부터 하나씩 고쳐 나가보자.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내리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업을 불러 모으기 훨씬 쉬워질 것이다. 세계 각국이 기업을 위해 규제를 풀고 법인세를 내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2000년 이후 법인세를 내린 나라는 많지만 올린 나라는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모양새다. 최근 일부 정치권에서 법인세를 올리자는 목소리가 날로 커지는 것 같다. 경기불황으로 복지 예산이 부족하니 기업에게 세금을 더 걷어 세수를 늘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철새 우대정책도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철새를 내쫓는 박해정책이다. 한국에 오려는 기업뿐 아니라 이미 둥지를 튼 기업조차 해외로 내몰 수 있다. 이러한 정책은 결국 중국·일본 등 이웃 나라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게 할 것이다. 한국을 떠난 철새가 하늘을 날아 자기네 나라로 올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철새 도래지에 먹이가 많아지면 그에 따라 날아오는 새도 많아진다. 먹이가 적어지면 사람들이 일부러 뿌려서라도 철새를 유인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기업을 모으기 위해 적극적으로 유인책을 써야한다. 기업 수가 늘어야 나라 곳간도 찬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